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시편 90편] “덧없는 인생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시편 90편, “덧없는 인생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시편 90:1-17

 

시편 90편은 표제에 나온대로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표제는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모세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내 줍니다. 쉽게 말해서 세상과 하나님 중에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그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이냐 하나님이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을 선택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세상에도 한 발, 하나님에게도 한 발을 들여놓은 양다리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를 본받아,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는 자기가 속해있는 하나님, 자기의 주인인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것은 1절과 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하나님은 대대로 우리 인간의 거처가 되어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일까요? 3절부터 6절까지가 바로 무한하신 하나님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정말 보잘것 없고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은 한마디로 죽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신앙인들은 육체적인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상태에 놓이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처인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순간 바로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의 상황에 처하는 것입니다.

 

3절부터 6절까지를 보면, 하나님의 한 말씀이면 인간은 바로 흙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천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간 어제처럼, 밤의 한 순간처럼 짧습니다.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순식간에 멸하실 수 있습니다. 아침에 핀 꽃이 저녁에 시들어 말라지는 것처럼 인간의 인생은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시인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인은 천년을 하루나 밤의 한 순간으로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서 길게 살아봐야 70 혹은 80밖에 살지 못한다는 인생의 짧음과 허무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이런 짧은 인생을 자랑해봐야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봤던 TV CF 중에서 인상깊었던 광고 하나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방랑시인 김삿갓이 등장했던 그 광고의 카피는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사는 인생들아”라는 문구였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백년도 못살면서 마치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을 기록했던 모세는 12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자신의 120년의 세월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세에게서 120년의 세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단강을 건너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요단강 동편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의 삶이 가능했던 이유는, 모세가 세상이나 인간들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삶은 백년 천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고,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12절에서 자신들의 삶을 계수하는 지혜의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날을 셈한다는 것은 언젠가 다가올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겠다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따라서 미리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것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덧없는 인생 속에서 진정한 지혜의 근원이 어디인지 모세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간절하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이 구절은, 출애굽기 32장에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모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자신은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백성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곡하게 기도했던 모세의 모습입니다.

 

시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 고백을 모아놓은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시편을 묵상하며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지만,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 시편을 통해서 자신들의 믿음을 돌아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시편을 읽으면서 13절을 읽을 때, 과거 조상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께 범죄했던 것을 떠올리고, 그러한 죄악에 대해서 진노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걸었던 모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인 17절을 보면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라는 구절이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견고하게 이뤄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인간들이 간절히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는 사실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자세는 우리에게도 요구되어지는 기도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그것을 내가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편 이 구절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행동으로 움직이셔야만 이뤄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 90편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이 진정 하나님께 속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보내는 세월이 의미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소원들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그것을 간절하게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바라기는 시편 90편의 신앙고백을 여러분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고, 그 신앙고백대로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12/31] 새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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