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시편 51편] “나를 정결케 하소서”

시편 51편, “나를 정결케 하소서”
 
이 시편은 특별히 사무엘하 11~12장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는 다윗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밧세바와 정을 통하고, 그것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게 만듭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의 예언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가 다윗의 잘못을 책망하는 이야기가 사무엘하 12장에 이어집니다. 이러한 나단의 책망에 대해서 다윗은 용서를 빌고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사울과 다윗을 비교해 보면 죄의 무게로 따지면 사울보다 다윗이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이후 사울은 변명하기에 급급했고, 다윗은 진심으로 뉘우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또한 인간의 노력으로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 중에서 죄사함을 위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받는 죄사함은 종교 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 의식을 행하는 인간의 진실된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시인은 1절부터 6절까지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간구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1절에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비가 풍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삶을 살았다거나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신앙인이기 때문에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죄인이기 때문에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참된 용서는 자신의 죄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죄용서를 받아도 그것에 대해 기쁨과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은혜입니다. 그런데 만약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다시 그 죄를 짓는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마음이 아프실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지은 죄를 용서받은 이후에 다시 그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아프시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우리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십니다. 그런데 벼룩도 낯작이 있다는 속담처럼 우리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간구하는 모습에 머물러서는 우리의 신앙에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은 죄를 용서받은 이후에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다윗은 10절에서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하며, 자신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죄사함을 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는 ‘정한 마음’을 새롭게 지음받는다는 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시는 죄사함을 간구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서 죄사함 이후에 성결한 삶을 살기 원하는 시인의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죄를 용서 받는다는 것은 어느 종교에서나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에서도 죄의 용서는 가장 핵심적인 신앙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의 용서는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주어지는 은혜라는 것이 시편, 나아가서 구약성경이 강조하는 메시지입니다.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죄의 용서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만이 죄의 용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정한 마음’의 창조(10절)를 간구하는 사람은 우선 자신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마음을 정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 내 마음을 정결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길은 하나님의 자비, 긍휼, 사랑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 공동체를 통해서 죄가 씻음받았음을 선언받았습니다. 7절에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는 종교적인 의식 속에서 죄사함을 받는 것을 연상시키는 구절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정결하게 되려면 우리는 우리의 속마음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께 자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동안 지은 죄를 숨기지 않고 낱낱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로는 수치스러운 일이고,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정한 죄사함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시인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기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모두 죄라는 것을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4절부터 17절까지는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4장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를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8절과 19절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재건해야 한다는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부분의 표현 때문에 이 시를 다윗 시대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 이후에 쓰여진 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부록으로 후대에 첨가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윗은 생전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 이후에 바벨론 포로 이후에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것이라는 희망은 다윗 시대 이후의 모든 이스라엘 민족의 바램이었습니다.
 
결국 시편 51편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죄사함을 받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개인적으로 산에 올라가서 혼자만의 기도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죄사함은 하나님 앞에 진실된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정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을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거듭난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그 속에 ‘정직한 영’을 가득 부어달라고 간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이 시간 주 앞에 나오신 여러분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진정한 죄사함을 받으시고, 죄사함 이후의 성결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께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09/17] 새벽기도

댓글 없음:

댓글 쓰기